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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건의 내러티브 리포트] ‘호남선교 1번지’ 나주교회(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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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태건 기자 gordon@kuc.or.kr 입력 2024.06.30 22: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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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교회를 지으면서도 옛 예배당을 헐지 않은 이유?
나주교회 성도들이 새 교회를 지으면서도 옛 예배당을 헐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나주교회에 도착하니 하나둘 성도들이 교회로 모여들었다. 2층 예배당으로 올라가기 전, 옛교회가 눈에 들어왔다. 은은한 가로등 불빛을 받아서인지, 한낮의 뜨거운 태양빛 아래와는 달리 고즈넉한 인상이었다. 


기자가 시골의 작은 교회 출신이기 때문일까. 취재를 위해 교회에 방문하면 으레 고향 교회와 비교하게 된다. 나주교회는 도계교회보다 두 배 정도 커 보였다. 성전의 규모도 출석하는 성도들의 수도. 그리고 무엇보다 어린이와 3040세대 성도와 예배드릴 수 있음에 감사했다. 비록 구도심이 활력을 잃어감에 따라 나주교회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이날 예배 모습에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석봉 담임목사는 이내 정장으로 갈아입고 예배당에 올라와 노트북 컴퓨터를 설치했다. 어느 교회에 가도 미디어를 활용해 설교하는 목회자를 만나는 건 이 시대에 ‘당연한’ 일이다. 박 목사도 다양한 그림과 그래프를 보여주며 흥미롭게 설교를 이끌었다. 그런데 이날 박 목사는 유독 일찍 설교를 마쳤다. 


그리고 기자를 성도들께 소개하고는 나주교회에 취재 온 목적을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교회로 오는 차 안에서 취재 목적을 성도들께 설명해달라는 귀띔이 있었지만 이렇게 공식적으로 앞에 나서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목소리를 가다듬고 씩씩하게 인사하고 나주교회 구교회를 알게 된 경위부터 시작해 취재 오기까지 일련의 일들을 설명했다. 그리고 옛 교회의 역사는 물론 관련된 이야기를 간직한 분들을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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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 후 연세가 있는 성도들은 대부분 예배당 뒤편에 남아 계셨다. 고향 교회 어르신들을 만날 때와 다름없는 살가움이 기자를 감쌌다. 시간이 적잖이 늦은 터라 지금의 교회를 지으며 구교회를 허물지 않은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이기영 수석장로가 “거창한 이유라기보다는 보전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의견이 주류였다”며 “(구교회 건물을)방직공장에 세를 주고 나무바닥과 창틀 지붕을 새로 했다”고 답했다. 그러고 보니 고향 교회도 기자가 초등학생이던 때에는 삐걱거리는 나무바닥이었다. 오래전 교회는 다들 그런 모습이었나 보다. 나주교회가 더 친근하게 느껴졌다.


문덕자 집사는 옛 교회 옆에 있던 유치원이 친정이었다며, 외국인선교사가 사진을 찍어 주던 기억을 떠올렸다. 교회에서 밀가루와 옥수수, 설탕 등을 나눠 줄 때면 동네사람들이 자루를 손에 들고 줄을 섰다고 증언했다. 낮에 허숙희 집사(영산교회)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이번처럼 복수의 증언이 있을 경우, 이야기의 신뢰성과 생생함이 눈에 띄게 상승한다. 기자의 펜도 바쁘게 움직였다.


“우리 할아버지께서 이 동네에서 한약방을 하셨어요. 그래서 한약을 지어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전도를 하셨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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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주교회의 기초를 닦은 한효선 씨의 손녀 허옥희 집사의 말이었다. 낮에 인터뷰한 허숙희 집사의 언니다. 문득 한효선 씨가 운영하던 한약방의 흔적이라도 남아있을까 싶어 위치를 물었다. 그러자 “(한약방이)터미널 가는 길에 있는데 지금은 그 자리에 유명 빵집이 들어섰는데, 간판이 파란색”이라고 설명했다. 빵집의 정체를 짐작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찾기 어렵지 않아 보였다. 내일 오전에 찾아가 보기로 했다. 


한겨울에 난방도 없이 새벽기도를 했던 일화, 가로등도 없는 길을 20리나 걸어서 예배드리러 왔던 일 등 어렵고 힘들었던 지난날을 떠올리면서도 그들은 입을 모아 그때가 기쁘고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기자와 인사를 나눌 때 성도들의 미소가 10와트 백열전구처럼 밝았다면 신앙의 추억을 나누는 성도들의 얼굴은 적어도 100와트 백열전구만큼 빛났다. 


성도들과의 인터뷰를 마치고 오후에 스마트폰 앱으로 예약해둔 숙소로 발을 옮겼다. 교회 근처 구도심에서는 괜찮은 숙소를 찾을 수가 없었다. 그만큼 구도심의 경제활동이 둔화된 것이라 볼 수 있었다. 숙소 대부분이 나주역 도는 혁신도시 쪽에 몰려 있었다. 구도심에는 나주곰탕거리와 나주읍성 고샅길이 있어 관광객들을 초청하고 있지만, 아무래도 거리의 활기는 신도시만 못한 게 사실이다.


숙소 1층 편의점에서 간식거리를 사서 방으로 올라갔다. 짐을 내려놓고 광주에 사는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친구는 나주혁신도시를 가리켜 나주라는 도시에서 표류하는 섬이라고 표현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해보니 그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 나주라고 하기에는 상당히 동떨어져 있었다. 주중에는 2040세대가 꽤 많이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주말이면 다들 서울로, 광주로 올라가는 까닭에 오히려 주말이 휑하다고도 했다.


전화를 끊고 샌드위치를 크게 베어 물고는 노트북의 전원을 켰다. 짧은 시간에 다양한 이야기를 들은 터라 녹취록을 보면서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었다. 음성녹음을 자동으로 텍스트로 변환해 주는 앱을 사용해 1차로 정리했다. 하지만 워낙 다양한 목소리가 녹음됐기에 앱으로 변환한 텍스트를 그대로 믿을 수는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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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폰을 가져왔다면 더 정확하게 들을 수 있었을 텐데 하며 후회했지만, 지금은 스마트폰의 스피커에 기댈 수밖에 없었다. 한창 텍스트를 정리하던 중 문자메시지가 들어왔다. 낮에 부탁했던 인터뷰이의 연락처를 보내온 것이다.


먼저 나주학연구소 김관영 소장은 <근대이행기 나주지역 개신교의 지역교육 공헌 일고찰>이란 논문을 통해 일제강점기에 금명학원과 본량의숙을 세워 교육계몽운동을 주도한 나주교회를 조명하는 등 일제강점기 나주교회를 연구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사람이기에 꼭 만나보고 싶었다. 다음으로 하태열 집사는 아버지께서 나주교회 2세대로 교회를 섬기셨고 곁에서 구교회에 대해 많이 보고 들었을 것이라며 박 목사가 추천했다. 


시계를 보니 시각은 이미 자정에 가까웠다. 인터뷰 섭외는 내일 아침 진행하기로 하고 잠깐 산책을 다녀오기로 했다. 지도를 보니 숙소 근처에 빛가람호수공원이 있는 듯했다. 


얼마나 걸었을까. 벤치에 낮아 고개를 들어보니 기자는 빌딩숲에 둘러싸여 있었다. 나주교회가 세워질 당시 지금은 구도심이라 불리는 그곳은 어쩌면 지금 기자가 있는 혁신도시보다 더 발전했고, 사람의 왕래가 잦은 곳이었을 것이다. 그 가운데 교회를 세우시고, 그 교회를 여전히 보존하신 하나님의 섭리가 오늘 인터뷰 내용 중 담겨 있을 것을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이 절로 들었다. 그리고 내일 취재를 통해 이런 섭리가 더 분명하게 드러날 것을 기대하니 야밤인데도 가슴이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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