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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홍준의 삼육동 통신] 청춘의 독서④ 한금윤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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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범태 기자 kbtlove@kuc.or.kr 입력 2019.12.04 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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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독서란 ‘속 깊은 친구’ ...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존재”
한금윤 교수는 자신에게 독서란 ‘속 깊은 친구’라고 풀었다. 가족처럼 언제나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라고.
삼육대학교 홍보팀은 인터뷰 기획 <청춘의 독서>를 연재한다. 삼육대 교수들이 청춘 시절 품었던 고민과 의문, 희망 혹은 사랑 같은 것들을 ‘독서’라는 화두로 풀어보는 인터뷰 코너다.

코너 이름인 <청춘의 독서>는 유시민 작가의 동명 저작에서 따왔다. 하지만 기획 의도는 “청춘은 들고양이처럼 재빨리 지나가고 그 그림자는 오래도록 영혼에 그늘을 드리운다”(<청춘의 문장들>, 김연수, p.141)는 문장에 보다 가깝다.

청춘은 느닷없이 지나가 버렸지만, 저들의 인생에 여전히 깊고 뚜렷한 흔적으로 남아있는 ‘책’에 관해 묻는다. 그리고 그 대답을 함께 나눈다.

이 대화가 삶의 갈림길에 선 삼육동의 청춘들뿐 아니라, <재림마을> 가족에게도 유의미한 길잡이가 되어줄 것이라 여겨 해당 기사를 여기 공유한다. - 편집자 주 -  


▲ 교수님께 독서란 무엇인가요?
- 나에게 독서란 ‘속 깊은 친구’입니다. 주로 슬플 때나 외로울 때, 화날 때, 또는 주어진 상황에 의문이 생길 때 책을 찾아서 읽고 이해를 하려고 해요. 사람들과 대화할 때는 깊은 얘기를 못 하잖아요. 하지만 책은 그 속에서 내가 발견할 수 있을 만큼 발견하고, 읽고 나서 그 감정을 이해하고, 또 내가 남에게 보이고 싶지 않은 부분은 그 친구한테만 얘기할 수도 있어요. 이런 과정을 통해 나 자신이 성장하기 때문에 속 깊은 친구라는 겁니다. 가족처럼 언제나 나를 지지하고 격려해주는 존재이기도 합니다.

▲ 국문학을 전공하셨어요. 책을 좋아하셨을 것 같은데요.
- 지금은 책이 친구이고 가족 같은데 처음부터 그러진 않았어요. 국문과를 ‘책 좋아해서 갔나’라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그냥 상황 봐서 갔어요. 책을 읽기 시작한 건 좋아하던 선배 때문이었어요. 문학을 별로 안 좋아했는데 당시 눈에 들어온 선배가 문학 읽기 학회를 해서 저도 가입을 했어요. 처음에 조세희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읽고 세미나를 한다고 하더라고요. 고등학교 때까지는 부분적으로 읽었는데 선배에게 잘 보이려고 그때 처음으로 끝까지 다 읽었죠.

책을 읽고 세미나에서 “작가가 주인공을 애정 있게 그린 것이 참 감명 깊었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했어요. 정말 소박한 감상이었는데 그 선배가 책을 참 잘 읽었다고 칭찬을 해줬어요. 책을 별로 안 좋아하는 사람이 그 뒤로 선배에게 주목받기 위해서 정말 열심히 읽었죠. 나중에 그 선배는 다른 학회로 옮겼지만, 저는 학회를 계속 하면서 책 읽는 것이 좋아졌어요. 그 마음을 떠올리면서 나중에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으로 논문을 쓴 적도 있었답니다.

▲ 지금은 책 읽는 일이 직업이 되셨어요. 보통 문학은 취미로 읽는데 그걸 직업적으로 읽고 연구하고 가르치는 교수님은 독서 행위가 일반과는 조금 다를 것 같아요. 흔히 좋아하는 일도 직업이 되면 싫어진다고 하잖아요. 여전히 책 읽기, 특별히 문학이 즐거우신가요?
- 책 읽는 것이 너무 좋아서 계속 공부하고 싶은 마음으로 대학원에 갔어요. 그런데 막상 대학원에서는 학문적으로 접근해야 하니까 작품을 통해 나를 발견하고 이해하는 일반적인 독서와는 아주 달랐어요. 연구할만한 작품을 읽어야 하고, 분석해야 하고, 이론적인 방법론을 모색하면서 내 연구 결과가 어떻게 평가될지 항상 긴장하면서 책을 읽어야 했지요.

한동안은 정말 좋아하면 대학원 가면 안 되는구나 이런 생각도 했는데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어요. 대학원에서의 훈련을 통해 한 작품을 깊이 있게 감상하고, 작품을 종합적이고 전체적으로 파악하는 능력을 기를 수 있었어요. 지금도 연구를 위해 읽는 작품은 좀 더 꼼꼼히 그리고 여러 번 반복해서 읽어요. 같은 영화도 두 번째 보면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되잖아요. 주관적인 인상비평 수준을 넘어서 한 작품을 깊이 있게 알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런 고통스러운 책 읽기가 도움이 많이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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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근대문학회 공동대표를 맡고 계십니다. 특별히 올해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문학계에서 이를 조명하는 기획이나 행사들이 많았어요. 교내에서 학술대회를 여시기도 했죠. 우리 근대문학은 어떤 특징을 갖고 있나요? 그 중요성과 가치에 대해서도 이야기해주세요.
- 아직은 근대문학과 현대문학의 정확한 경계가 정립되진 않았지만, 보통 식민지 시대와 해방기까지를 근대문학으로 봐요. 우리나라 근대문학은 참 마음이 아파요. 근대가 일본제국주의에서 시작됐고, 나라와 나라가 정복해서 강제적으로 펼쳐졌잖아요. 그래서 그 시대의 작품을 읽으면 공동체 속에서 개인이 얼마나 힘든지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게 돼요.

인간의 삶에는 희망이 있고 절망이 있는데, 요즘은 절망의 원인을 개인의 탓으로 돌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런데 당시에는 그 절망을 어떤 시대의 것으로 이해했어요. 그 과정에서 문학은 이를 직접적으로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상처나 어려움, 고통을 보여주고 그렇다면 사회, 국가 혹은 공동체를 어떻게 이끌어가야 하는지 문제를 제기하고 제안을 했어요. 그럼으로써 결국 내 문제가 내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을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죠. 우리 근대문학의 특징입니다.

또한 지금의 현대적인 감수성과 감각의 기원을 살펴볼 수 있는 것이 근대문학이기도 해요.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많이 나온 채만식의 <탁류>에는 쌀을 거래하는 ‘미두시장’이 나와요. 마치 오늘날의 주식이나 비트코인처럼 황금만능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꿈을 갖고, 일확천금을 노리고, 쉽게 돈을 벌어서 천하게 쓰고, 결국엔 좌절하는 모습을 보여줘요. 지금 우리가 가진 것의 시초 모습이지요.

이처럼 대부분 근대작가가 보여주는 ‘근대의 욕망’은 그것이 가짜이기에 좌절하고 실패하고 죽음에 이른다는 통찰을 줘요. 그럼으로써 우리에게 자본주의 시대 욕망에 자아가 끌려갈 때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지 알려주죠. 시대상으로 거리가 있지만, 상당히 현대적인 감각으로도 이해하고 도움을 받는 데 큰 힘이 돼요.

▲ 질문의 범위를 확대해볼게요.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학작품이 정말 많습니다. 그럼에도 모국어로 쓰인 문학을 읽는 것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 질문이 이해가 갑니다. 세계적으로 위대한 문학작품은 정말 많아요. 자기한테 위로가 되고 힘이 되는 작품이 물론 좋지만, 그건 좋은 작품인 거죠. 문학작품의 위대함이 뭐냐고 하면 결국은 내가 경험하지 못한,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세계를 깊이 있게 통찰해서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지 않을까 싶어요. 또 시기하고 질투하고 미워하고 사랑하는, 인간의 어떤 감정을 간접경험하게 하고, 그걸 넘어서서 그럼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반성을 통해 성장할 수 있도록 하는 작품일 거예요.

선진국은 그러한 사회를 워낙 오랜 세월 동안 겪었기 때문에 우리 작품보다 더 깊고 위대한 느낌을 주는 작품이 많은 건 맞아요. 왜냐하면 우리나라는 현대사가 참 비극이잖아요. 나라도 뺏기고 전쟁도 나고, 산업화에 먹고사는 것에 너무 매달렸기 때문에 실존적인 고뇌나 삶의 깊이를 사유하기보다는 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어떤 공동체와의 갈등을 그린 작품들이 많지요. 요즘에 와서야 이제 우리 문학도 나다운 삶, 나의 실존적인 고뇌를 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걸 미리 보여주고 고민했던 세계적인 위대한 작품의 높은 수준에 박수를 보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데도 모국어 작품이 가진 아주 좋은 장점은 ‘무슨 말인지 안다’는 거죠. 내가 경험하는 세계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공감이 더 쉬울 수 있어요. 작품 속 인물과 사건에 대한 이해는 문화적인 경험이 있느냐 없느냐에 크게 달라져요. 또 디테일한 표현은 동시대적이고 동일한 국가적인 감수성이 있다면, 훨씬 더 공감하는 부분이 있겠죠. 그런 점이 모국어 문학작품이 가진 힘이에요.

그 밖에도 좋은 작가들은 표현과 감수성을 굉장히 예민하고 날카롭게 벼린다고 하잖아요. 그런 문장과 표현이 갖고 있는 즐거움이 있어요. 번역 투가 주는 난해함에서 벗어날 수도 있죠. 우리말의 표현이 주는, 말하지 않아도 공감되는 깊은 소통을 할 수 있기에 우리나라 문학작품이 좋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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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대학생들의 퍽퍽한 현실 속에서 ‘책 읽기’나 ‘청춘’ 같은 말을 하기가 참 쉽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청춘의 독서’를 이야기하신다면요.
- 취업난으로 청년들의 마음고생이 참 심하죠.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직장을 갖고 싶은 건 아주 자연스러운 거예요. 그걸 아주 쉽게 얻을 수 있는 시대가 있다면, 노력해도 쉽지 않거나 막히는 시대가 있는데, 바로 요즘이 그런 시대인 것 같아요. 저는 공부 쪽으로 갔지만, 공부한다고 다 교수가 된다는 보장이 있는 게 아니었어요. 그래서 저도 청춘들이 절망하고 낙담하고, 공부를 할 수도 없고 안 할 수도 없는 상황이 이해됩니다.

저는 그럴 때 책을 많이 읽었어요. 힘들고 절망스럽고 암담할 때 사람이 어떤 형태로든 풀어야 하는데, 그 푸는 여러 방법 중 독서가 실용적인 측면에서 가장 알찼어요.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그 감정에서 벗어날 수 있고, 소셜 미디어나 대중매체를 보는 것보다 조용히 책을 읽는 게 정서에도 도움이 많이 됩니다.

책을 쓰는 사람은 굉장히 많은 생각을 하면서 여러 번 걸러내고 또 걸러내면서 써요. 작가가 많은 고뇌 끝에 전달하는 메시지에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에 재미를 느끼면, 어떤 것보다 위로받고 성장할 수 있기에 이러한 시대일수록 책을 더 많이 읽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걸 읽어야 할까 고민하기보다 눈에 가는 거, 손에 잡히는 걸 읽어보세요. 읽을 때 내 불안함과 초조함이 희미하게 뒤로 물러나는 느낌을 받을 거예요. 책이 여러분의 ‘속 깊은 친구’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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